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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레미야애가 4:11-22  찬송가: 279장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을 점령할 때 여부스 족속이 있었던 예루살렘은 천연적으로 요새였기 때문에 점령하지 못한 땅으로 남아 있었는데 다윗이 예루살렘을 점령하여 그곳을 다윗성, 시온성이라고 불리게 되었습니다.

 

지형적인 위치가 천혜의 요새였으며 하나님의 임재하심이 있는 성전이 있었기 때문에 예루살렘은 무너지지 않을 것이라는 인식이 있었습니다.

 

그랬던 예루살렘이었는데 대적과 원수들이 들어와 결국 예루살렘이 무너지고 말았는데 그 원인을 11절에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그의 분을 내시며 그의 맹렬한 진노를 쏟으심이여 시온에 불을 지르사 그 터를 사르셨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예루살렘의 멸망이 죄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의 결과였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12절을 보면 ‘대적과 원수가 예루살렘 성문으로 들어갈 줄은 세상의 모든 왕들과 천하 모든 백성이 믿지 못하였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루살렘이 난공불락의 요새였기 때문에 세상 사람들도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였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자신들이 하나님의 선택받은 백성이고 하나님의 임재하심이 있는 성전이 있으며 하나님께서 지켜 주실 것을 약속하셨기 때문에 절대로 예루살렘이 무너지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약속은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고 순종할 때 그렇게 하시겠다는 약속이었는데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버리고 우상을 섬기는 죄악을 행하면서 하나님의 축복과 약속은 변함이 없을 것이라고 착각을 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렇게 된 원인을 13절에서 말씀하고 있는데 ‘그의 선지자들의 죄들과 제사장들의 죄악들 때문이니 그들이 성읍 안에서 의인들의 피를 흘렸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과 뜻을 선포하고 제사를 통하여 백성들의 거룩을 담당해야 할 영적 리더들이 죄에 빠른 발이 되었을 뿐만 아니라 회개하고 돌아오라고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는 선지자와 의인들의 말을 듣기 싫어해서 그들을 죽이고 피를 흘리게 함으로 하나님의 말씀이 선포되지 못하게 막아버렸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교회들이 죄를 죄라고 말하지 못하는 세상이 되었다고 합니다.

죄를 말하면 교인들이 교회에 오기 싫어하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죄에 대한 회개가 없이 축복을 말하고 성공을 말해야 교인들이 좋아하고 부흥을 한다는 말을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과 뜻은 사라지고 사람들이 원하는 것만 말하는 교회가 되어간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심판이 임하기 전 예루살렘이 그랬다는 것입니다.

 

14절에서 말씀하는 ‘그들’은 13절에서 말씀한 ‘선지자들과 제사장’들을 의미합니다.

이들은 마태복음 15장에서 예수님께서 바리새인들을 향하여 ‘그들은 소경이 되어 소경을 인도하는 자로다 만일 소경이 소경을 인도하면 둘이 다 구덩이에 빠지게 된다’고 말씀하신 것처럼 맹인 같이 방황하였으며 거룩해야 할 그들의 예복은 피로 더러워져서 만질 수도 없을 정도로 부정하게 되어 버렸다는 것입니다.

이들의 거짓 예언은 하나님의 심판이 임하기 전에는 사람들에게 평안과 위로를 주는 말씀이 되었을 것입니다.

지금처럼 우상을 숭배하고 죄를 행하더라도 하나님께서 지켜 주실 것이라는 은혜의 말씀처럼 여겨졌을 것입니다.

 

그런데 거짓 선지자들의 말과는 반대로 죄를 회개하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한 결과로 하나님의 심판이 임하게 된 것입니다.

 

그러자 15절에서 말씀하고 있는 것처럼 ‘사람들이 그들에게 외쳐 이르기를 저리 가라 부정하다 저리 가라 저리 가라 만지지 말라’고 하였다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그들이 도망하여 방황할 때에 이방인들도 말하기를 그들이 다시는 여기서 살지 못할 것이라’고 조롱을 하였다는 것입니다.

 

잠언 29장을 보면 ‘묵시가 없으면 백성이 방자히 행하게 된다’고 말씀하고 있는데 ‘방자히 행하다’는 말은 멸망의 길로 간다는 말씀입니다.

백성들을 바른 길로 인도해야 할 영적 지도자들이 타락을 하게 되자 백성들이 멸망의 길을 걸어가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16절을 보면 ‘여호와께서 노하여 그들을 흩으시고 다시는 돌보지 아니하시리니 그들이 제사장들을 높이지 아니하였으며 장로들을 대접하지 아니하였기 때문이라’고 말씀하고 있는데 다른 번역본을 보면 앞에서 말씀하는 그들과 뒤에서 말씀하고 있는 그들이 서로 다른 그들이라고 번역을 하고 있습니다.

 

앞에서 여호와께서 노하신 그들은 앞에서 말씀하였던 ‘거짓 선지자와 제사장들’을 의미하고 뒤에서 말씀하고 있는 그들은 흩어진 제사장과 장로들을 대접하지 않는 침략자라고 번역을 하고 있습니다.

 

백성들이 우상숭배와 죄악을 행하고 하나님을 떠나는데 일조했던 제사장과 지도자들에 대하여 하나님께서 그들을 흩어 버리시고 돌보지 아니하셨으며 침략자들도 제사장과 장로들을 높이거나 대우하지도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런 상황에서 17절을 보면 ‘우리가 헛되이 도움을 바라므로 우리의 눈이 상함이여 우리를 구원하지 못할 나라를 바라보고 바라보았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도움을 바랬던 대상은 ‘애굽’을 의미합니다.

 

예레미야 37장을 보면 바로의 군대가 애굽에서 나오자 예루살렘을 에워쌌던 갈대아인들이 그 소문을 듣고 예루살렘을 떠나자 하나님께서 바로의 군대는 애굽으로 돌아가겠고 갈대아인이 다시 와서 이성을 쳐서 빼앗아 불사를 것이라는 말씀을 하십니다.

 

그럼에도 애굽이 유다를 구원해 줄 것이라고 기대했지만 하나님의 말씀대로 애굽은 구원자가 되지 못했습니다.

 

오히려 18절 이하에서 말씀하고 있는 것처럼 ‘그들이 우리의 걸음을 엿보니 우리가 거리마다 다 다닐 수 없음이여 우리의 끝이 가깝고 우리의 날들이 다하였으며 우리의 종말이 이르렀도다 우리를 뒤쫓는 자들이 하늘의 독수리들보다 빠름이여 산꼭대기까지도 뒤쫓으며 광야에서도 우리를 잡으려고 매복하였다’는 것입니다.

 

20절은 유다의 마지막 왕 시드기야를 의미합니다.

‘우리의 콧김 곧 여호와께서 기름 부으신 자가 그들의 함정에 빠졌음이여 우리가 그를 가리키며 전에 이르기를 우리가 그의 그늘 아래에서 이방인들 중에 살겠다 하던 자였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현실은 예레미야 39장과 52장에서 말씀한 것처럼 예루살렘이 바벨론에게 포위 당하자 시드기야 왕이 성을 빠져 도망을 가다가 붙잡혀 두 눈이 뽑혀 바벨론으로 끌려가 죽는 날까지 감옥에 갇히는 수모를 당하게 됩니다.

 

21절은 유다의 멸망을 오히려 협조했던 에돔에 대해서 그들에게도 하나님의 심판이 이르게 될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22절을 보면 딸 시온의 회복을 말씀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딸 시온아 네 죄악의 형벌이 다하였으니 주께서 다시는 너를 사로잡혀 가지 아니하게 하시리로다 딸 에돔아 주께서 네 죄악을 벌하시며 네 허물을 드러내실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 에돔의 죄악을 벌하시고 심판하실 것을 말씀하시며 유다를 향하여서는 회복해 주실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은혜라는 것입니다.

죄에 대해서는 반드시 심판하시는 공의의 하나님이시지만 그의 백성들에게 긍휼을 베풀어 주시고 구원의 은혜를 베풀어 주시기를 원하는 사랑의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께서 회복케 하시고 지켜 주시는 은혜와 긍휼과 평강이 임하는 오늘 우리의 삶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