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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행전 2:14-21   찬송가: 183장

 

마가의 다락방에 모였던 제자들이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언어를 말하는 방언의 은사를 받고 하나님의 큰 일을 말하자 그곳에 모여 사람들이 소동하여 다 놀라 신기하게 여겼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곳에는 오순절을 맞이하여 각처에서 온 유대인들이 있었는데 어제 말씀을 보면 아시아와 유럽과 아프리카 등에서 태어나 그곳의 언어에 익숙한 유대인들의 큰 무리가 모여 있었는데 그들 모두가 자신들이 태어난 지역의 언어로 하나님의 큰 일을 말함을 듣게 된 것입니다.

 

그러자 다 놀라고 당황하여 ‘이 말하는 사람들이 다 갈릴리 사람이 아니냐’는 말을 하게 됩니다.

‘갈릴리 사람’이라는 말은 지금의 촌놈과 같이 배우지 못한 무지하고 무식한 사람이라는 의미가 들어 있습니다.

 

무지한 사람들이 각 나라의 언어들로 하나님의 큰 일을 말하는 것을 듣게 되니까 ‘이것이 어찌 된 일이냐’고 하면서 놀라고 당황하였는데 어떤 사람들은 ‘그들이 새 술에 취하였다'고 조롱을 하였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들의 반응은 하나님의 능력 가운데 살아가는 사람들을 대하는 세상 사람들의 반응과 같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성령의 은사를 받은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날 때 사람들은 자신의 생각이나 이성으로는 깨달을 수 없기 때문에 놀라거나 당황을 하든지, 세상의 과학이나 지식으로 이해할 수 없기 때문에 하나님의 능력을 부인하고 조롱하거나 비난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 같습니다.

 

그랬을 때 오늘 본문 14절을 보면 ‘베드로가 열한 사도와 함께 서서 소리를 높여 말을 합니다.

‘유대인들과 예루살렘에 사는 모든 사람들아 이 일을 너희로 알게 할 것이니 내 말에 귀를 기울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15절을 보면 ‘때가 제 삼시니 너희 생각과 같이 이 사람들이 취한 것이 아니라'고 말을 합니다.

제 삼시는 유대의 시간으로 지금으로 하면 오전 9시를 의미합니다.

지금 시간이 제 삼시, 오전 9시인데 우리가 술에 취한 것이 아니라고 하면서 구체적인 시간을 밝히고 있는데 그 이유는 제 삼시는 유대인들이 기도하기 위해서 정해진 시간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당시 유대인들은 하루 중 세 번 기도시간을 정하여 기도하였는데 제삼시, 육시, 구시였습니다.

지금으로 하면 오전 9시, 오후 12시, 그리고 오후 3시입니다.

 

베드로가 제 삼 시라고 구체적으로 시간을 밝힌 것은 우리가 술에 취한 것이 아니라 기도하고 있었다는 것을 강조하며 기도하는 시간에 제자들이 술에 취하였다 조롱하는 사람들을 향하여 우리가 술에 취한 것이 아니라 기도하고 있었다는 말씀인 것입니다.

 

그리고 난 다음 유대인들이 정말 알아야 할 것이 무엇인지를 말씀을 하는데 그것은 요엘서에서 말씀하고 있는 성경의 예언이 이루어졌다는 것입니다.

 

16절을 보면 ‘이는 곧 선지자 요엘을 통하여 말씀하신 것'이 이루어진 일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마가의 다락방에서 성령의 은사로 말미암아 각 나라의 언어들로 하나님의 큰 일을 말하는 것은 예언의 말씀을 이루는 사건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17절 이하의 말씀을 보면 요엘 2장에서의 말씀을 인용하고 있습니다.

요엘 2:28절 이하의 말씀을 보면 ‘그 후에 내가 내 영을 만민에게 부어 주리니 너희 자녀들이 장래 일을 말할 것이며 너희 늙은이는 꿈을 꾸며 너희 젊은이는 이상을 볼 것이며 그 때에 내가 또 내 영을 남종과 여종에게 부어 줄 것이며 내가 이적을 하늘과 땅에 베풀리니 곧 피와 불과 연기 기둥이라 여호와의 크고 두려운 날이 이르기 전에 해가 어두워지고 달이 핏빛 같이 변하려니와 누구든지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을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영을 모든 육체에 부어 주시겠다고 약속하신 예언의 말씀이 성취되었다는 것입니다.

 

요엘서에서는 ‘그 후에'라고 말씀하고 있는데 베드로는 ‘말세에'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말세는 마지막 때를 의미하는데 성경을 보면 승천하신 예수님께서 성령을 보내 주시고 다시 재림하실 때까지의 사이를 그렇게 부르고 있다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15장을 보면 예수님께서 ‘내가 떠나가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이라 내가 떠나가지 아니하면 보혜사가 너희에게로 오시지 아니할 것이요 가면 내가 그를 너희에게 보내리니'라고 말씀하시며 성령의 임재하심이 예수님의 승천 이후에 이루어지는 일이 될 것을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구약을 보면 하나님의 영이신 성령의 강림하심이 있었고 성령님의 감동하심으로 예언을 말하고 능력을 행하셨던 말씀을 볼 수 있있습니다.

물론 이전에도 성령님의 감동하심과 능력을 나타내 보이신 적이 있지만 예수님께서 승천하셔야 성령님이 보내시겠다고 하신 말씀은 성령님의 내주하시는 임재를 의미합니다.

 

그러니까 이전의 성령님의 감동하심과 능력은 그 사람 위에 머물렀다는 ‘upon’이라는 단어를 사용하였는데 예수님께서 승천하신 이후에 임하시는 성령의 임재하심은 거하다, 내주하다는 ‘dwell’이라는 단어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요한복음에서 예수님께서 가셔야 성령을 보내신다는 말씀은 예수님의 승천 이후에 비로서 성령이 믿는 자 안에 내주하시는 임재하심의 은혜가 임하게 될 것을 말씀하고 있는 것이며 오늘 본문에서 베드로가 인용하는 ‘내 영을 만민에게 부어 주시겠다’는 요엘서의 말씀이 같은 의미가 된다는 것입니다.

  

성령의 충만한 은혜로 말미암아 은사를 받은 자들을 말씀하는데 그 대상을 보면 ‘자녀들, 젊은이들, 늙은이들, 남종과 여종들에게 부어 주실 것을 말씀하면서 남녀노소나 빈부귀천에 상관없음을 말씀하고 있으며 하나님의 능력이 성령의 임재하심을 경험한 사람들을 통하여 나타나게 될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19절과 20절을 보면 주님 다시 오시기 전에 일어날 징조들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19절을 보면 ‘하늘에서는 기사를 아래로 땅에서는 징조를 베풀리니 곧 피와 불과 연기라’는 것입니다.

20절에서는 ‘주의 크고 영화로운 날이 이르기 전에 해가 변하여 어두워지고 달이 변하여 피가 될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주의 크고 영화로운 날은 주님께서 재림하시는 날을 의미합니다.

주님께서 재림하시기 전에 이와 같은 징조들이 나타남으로 마지막 때가 임하게 될텐데 그 때에 21절에서 말씀하고 있는 것처럼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받을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21절 말씀에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예수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고백하여 주님께서 보내신 성령의 내주하심을 경험한 사람들을 의미합니다.

베드로는 구약의 요엘서에서 말씀하고 있는 구원의 은혜가 바로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그의 보내신 성령님의 임재하심을 통하여 이루어질 것을 예언하고 있음을 말씀하면서 이제 누구든지, 유대인이든지 흩어져 있던 사람이든지, 이방인이든지 남녀노소, 빈부귀천을 막론하고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받을 것이라고 선포하고 있는 것입니다.

 

무서워서 종들에게조차 예수님을 부인했던 베드로였고, 자신도 잡혀서 예수님처럼 될까봐 숨어 있었던 베드로였지만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성령의 권능이 임하게 되니까 이제 세상을 향하여 더 이상 무서워하지도 부끄러워 하지도 않으며 담대히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일에 우뚝 서게 된 것입니다.

 

성령의 충만한 임재하심과 성령의 능력을 통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증거하는 주님의 증인으로서 세상을 향해 담대히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선포하는 주님의 영광교회가 되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