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행전 2:22-36 찬송가:27장
오늘 본문 22절을 보면 베드로가 ‘이스라엘 사람들아 이 말을 들으라’고 말씀하고 있는데 여기서 ‘들으라’는 단어는 구약의 핵심 단어 가운데 하나인 ‘쉐마’와 같은 의미입니다.
‘쉐마’는 주의를 기울여 들으라는 명령어인데 베드로는 ‘쉐마 이스라엘’이라고 하면서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하는 이스라엘 사람들아 당신들은 이 말씀을 반드시 주의를 기울여 들어야 합니다 라고 명령을 하고 있는 말씀입니다.
왜냐하면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가 구원을 받게 되는데 그 주님이 누구인지 알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라는 의미라고 할 수 있습니다.
베드로는 너희가 아는 바라고 말씀하면서 하나님께서 나사렛 예수를 통하여 큰 권능과 기사와 표적을 너희 가운데서 베푸심으로 너희에게 그를 증언하셨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증언하다’는 말은 나타내 증명해 보이셨다는 뜻으로 예수님께서 바로 구약에서 예언된 메시야, 주가 되신다는 것을 예수님의 공생애 가운데 이적과 표적을 통해 증명해 보이셨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23절을 보면 ‘그가 하나님께서 정하신 뜻과 미리 아신 대로 내준 바 되었거늘 너희가 법 없는 자들의 손을 빌려 못 박아 죽였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신 것이 하나님께서 정하신 뜻이었으며 미리 알고 계셨다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께서 정하신 뜻은 24절에서 말씀하고 있는 것처럼 ‘하나님께서 그를 사망의 고통에서 풀어 살리셨는데 그 이유는 그가 사망에 매여 있을 수 없었기 때문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러면서 그에 대한 이유를 구약의 말씀을 인용하면서 말씀을 하는데 다윗이 시편 16편에서 고백한 말씀이 바로 그에 대한 이유를 설명해 주는 말씀이라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25절에서 28절까지의 말씀은 시편 16:8-11절을 인용한 말씀으로 다윗이 주라고 고백한 그 분이 바로 메시야이며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의미하는 예언의 말씀이었다는 것입니다.
25절에 ‘내가 항상 내 앞에 계신 주를 뵈었음이여’라는 말씀에서 여기서 ‘뵈었다’는 단어는 ‘미리 본다, 미리 안다’는 의미가 있는데 이 단어가 과거형이 아니라 미래형으로 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다윗의 고백은 항상 주께서 내 앞에 계실 것임을 미리 보았고 알았다는 의미라는 것입니다.
다윗의 시편이 단순히 자신의 신앙을 고백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감동하심으로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그래서 다윗의 시편을 통하여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구원하실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하는 계시의 말씀을 담아 놓으셨다는 것입니다.
26절에서 이어지는 다윗의 고백을 보면 ‘내 마음이 기뻐하였고 내 혀도 즐거워하였으며 육체도 소망 안에서 안식할 수 있게 되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27절에서 말씀하고 있는 것처럼 ‘내 영혼을 음부에 버리지 아니하시며 주의 거룩한 자로 썩음을 당하지 않게 하실 것이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이 말씀이 두 가지 의미를 담고 있는데 하나는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내 영혼을 지옥에 가도록 버려지 아니하시며 영원히 썩지 않고 부활하신 예수님처럼 생명 가운데 거룩하게 살게 해주실 것이라는 의미입니다.
그래서 28절을 보면 다윗은 ‘주께서 생명의 길을 내게 보이셨으니 주 앞에서 내게 기쁨이 충만하게 하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보이셨다’는 단어는 ‘확증해 주셨다’는 의미로 주께서 영원한 생명의 길을 내게 확증해 주셨기 때문에 주 앞에서 나의 기쁨이 충만하게 되었다는 말씀입니다.
또 하나의 의미는 다윗을 통해 예표하고 있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으심과 부활을 예표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29절 이하의 말씀을 보면 성령의 감동하심을 입은 베드로가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형제들아 내가 조상 다윗에 대하여 담대히 말할 수 있노니 다윗이 죽어 장사되어 그 묘가 오늘까지 우리 중에 있도다 그는 선지자라 하나님이 이미 맹세하사 그 자손 중에서 한 사람을 그 위에 앉게 하리라 하심을 알고 미리 본 고로 그리스도의 부활을 말하되 그가 음부에 버림이 되지 않고 그의 육신이 썩음을 당하지 아니하시리라’고 하였다는 것입니다.
베드로는 다윗을 선지자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구약을 보면 다윗을 선지자라고 말씀하는 것을 볼 수 없는데 베드로가 그렇게 말씀하고 있는 이유는 하나님께서 그의 자손 중에 한 사람을 그 위에 앉게 하리라 하심을 알고 미리 보았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다윗의 고백은 다윗의 후손으로 왕권을 가진 메시야로 오실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예표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십자가에 달려 죽으신 예수님께서는 음부에 버림이 되지 않고 그의 육신이 썩음을 당하지 않는 부활의 몸을 입고 다시 사셨다는 말씀인 것입니다.
그러면서 32절을 보면 ‘이 예수를 하나님이 살리신지라’고 말씀하면서 이 모든 일을 계획하시고 성취하신 분이 하나님이시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정하신 뜻대로 이 모든 일을 성취하셨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면서 우리가 다 이 일에 증인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마가의 다락방에서 성령의 충만하심으로 권능을 받은 제자들을 의미합니다.
베드로가 우리가 다 이 일에 증인이라고 말씀하는 이유는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신 것을 보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성령의 임재하심을 통하여 이 모든 일이 하나님께서 정하신 뜻이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33절을 보면 ‘하나님이 오른손으로 예수를 높이시매 그가 약속하신 성령을 아버지께 받아서 너희가 보고 듣는 이것을 부어 주셨다’고 말씀하는 것입니다.
34절을 보면 ‘다윗은 하늘에 올라가지 못하였다’고 말씀하고 있는데 이것은 다윗의 영혼이 천국에 올라가지 못하였다는 의미가 아니라 다윗의 육신은 썩어져 부활의 몸으로 천국에 올라가지 못한 상태라는 의미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다윗의 또 다른 시편인 시편 110편의 말씀을 인용하면서 다윗이 ‘주께서 내 주에게 말씀하시기를 내가 네 원수로 네 발등상이 되게 하기까지 너는 내 우편에 앉아 있으라’고 말씀하신 것은 하나님께서 부활하셔서 승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향하여 하신 말씀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36절을 보면 ‘그런즉 이스라엘 온 집은 확실히 알지니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은 이 예수를 하나님이 주와 그리스도가 되게 하셨다’고 말씀하면서 말씀을 마치고 있습니다.
주와 그리스도는 구약의 예언을 성취하신 만왕의 왕이신 메시야가 예수님이시며 구원을 이루시는 주인 되신 하나님이 바로 당신들이 십자가에 못박은 예수님이시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누구든지, 유대인이든지 흩어져 있던 사람이든지, 이방인이든지 누구든지 주의 이름 다윗이 고백했던 그 주님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게 된다는 말씀인 것입니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은 베드로는 이제 주님께서 사명으로 주신 주님의 증인이 되어 구원의 유일한 길인 예수 그리스도의 증인으로 복음을 증거하고 있는 것입니다.
증인이라는 단어를 보면 ‘순교자’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붙잡힐 것이 무서워 예수님을 부인했던 베드로였고 잡힐까봐 숨어 있었던 베드로였지만 그가 성령의 충만함을 입고 이제는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복음을 증거하는 주님의 증인으로 일어서고 있는 것입니다.
주님의 영광교회가 새벽제단의 기도의 용사들이 베드로와 같이 주님의 증인으로 일어서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증거하는 증인된 삶을 살아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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