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엘상 30:1-15 찬송가: 365장
블레셋의 용병으로 이스라엘과 전쟁에 참여할 뻔하였던 다윗은 다시 시글락으로 돌아오게 되는데 블레셋 군대가 진을 치고 있던 아벡에서 시글락까지 오는 데만 사흘이 걸렸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때 시글락에서는 아말렉 사람들이 쳐들어 와서 네겝과 시글락을 불사르고 거기에 있는 여인들을 한 사람도 죽이지 않고 다 사로잡아 끌고 갔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네겝은 블레셋과 경계를 둔 유다에 속한 지역이었고 시글락은 원래 시므온 지파에 속한 땅이었는데 블레셋에게 빼앗긴 지역이었습니다.
블레셋과 이스라엘 모두 전쟁을 하기 위해서 군사들을 징집하였기 때문에 성에는 남자들이 없고 여인들과 아이들 뿐이었을 것입니다.
아말렉 사람들은 그 때를 이용해 네겝과 시글락을 쳐서 성읍을 불사르고 여인들과 자녀들을 모두 사로잡아간 것입니다.
아말렉 사람들이 시글락 성읍을 불살랐던 이유는 다윗에 대한 보복을 하기 위함이었을 것입니다.
또한 성읍의 여인들과 아이들을 죽이지 않고 사로잡아간 것은 노예로 팔거나 종으로 부리기 위한 목적이었을 것입니다.
다윗과 그의 사람들이 시글락으로 돌아왔을 때 성읍은 불에 탔고 다윗의 아내였던 아히노암과 아비가일 뿐만 아니라 모든 여인들과 그들의 자녀들이 사로잡혀간 상태였습니다.
4절을 보면 ‘다윗과 그와 함께 한 백성이 울 기력이 없도록 소리를 높여 울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다윗이 블레셋으로 들어온 이유는 사울로부터 자신을 보호하려고 하는 이유뿐만 아니라 자신을 따르는 사람들을 지키기 위한 목적이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성읍이 불에 타고 아내와 자녀들이 사로잡혀가 버린 것입니다.
모든 기대와 소망이 사라져버린 상태가 되어 버린 것입니다.
그러자 6절을 보면 다윗과 함께 했던 백성들이 ‘자녀들 때문에 마음이 슬퍼서 다윗을 돌로 치자’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이들은 다윗과 함께 하기 위해서 기꺼이 사울의 대적이 되었고 도망자가 되었던 사람들이었습니다.
다윗과 함께 라면 목숨을 내놓고 전쟁에도 참여하고 싸웠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랬던 사람들이 다윗을 돌로 쳐서 죽이자는 말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자신들에게 일어난 책임이 모두 다윗 때문이기 때문에 다윗을 돌로 죽여야 하겠다는 것입니다.
이들이 이런 반응을 보인 이유가 그들의 자녀들 때문이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사람이 자녀 문제에 부딪치면 이성적인 판단이 마비되고 감정 컨트롤이 상실되는 것을 보여주는 것 같습니다.
백성들의 말에 다윗이 크게 다급하였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다급하다는 말은 ‘자신도 괴로운데 어떻게 대처를 해야 할지 몰라 난감한 상황이었다’는 의미입니다.
이스라엘과의 전쟁에 참여할 뻔한 상황에서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겨우 빠져나올 수 있었는데 성이 불에 타고 아내와 자녀들이 사로잡혀가 슬픔에 사로잡혀 있는데 믿고 따랐던 백성들마저 다윗을 돌로 치려고 하는 상황이 된 것입니다.
그런 상황에서 다윗도 크게 다급할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이어지는 말씀을 보면 다윗이 ‘그의 하나님 여호와를 힘입고 용기를 얻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용기를 얻었다는 말은 ‘달라붙다, 회복하다, 강하게 하다’는 의미입니다.
다윗은 일상의 삶이 하나님을 찬양하고 기도하는 삶이었으며 대적과 싸워 승리할 때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믿음의 사람이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자신의 힘으로 어찌할 수 없는 힘들고 어려운 상황에서도 하나님을 붙들고 의지하는 사람이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힘입고 용기를 얻으니까 다윗을 향하여 돌을 들려고 하는 사람들 앞에서 담대함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7절을 보면 다윗이 제사장 아비아달에게 에봇을 가져오라고 합니다.
에봇에는 우림과 둠밈의 흉패가 있어 하나님의 판결을 물었는데 다윗은 지금 상황에서 무엇보다 필요한 것이 하나님의 판결이라는 것을 깨달았던 것입니다.
백성들이 다윗을 죽이려고 하는 심각한 상황에서 너희들이 나에게 어떻게 그럴 수 있느냐고 따지거나 내가 너희들을 위하여 한 일이 얼마인데 하면서 나를 그렇게 대하느냐고 자신을 변호하거나 싸우기 보다 하나님의 뜻을 구하고 있는 것입니다.
다윗은 사로잡혀간 가족과 백성들을 다시 찾을 수 있는지 하나님께 질문합니다.
내가 이 군대를 추격하면 따라 잡을 수 있습니까? 하나님의 뜻을 구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대답을 하십니다.
그를 쫓아가라 네가 반드시 따라잡고 도로 찾을 것이라는 말씀이었습니다.
다윗은 자신과 함께 한 육벽 명의 사람들을 이끌고 그들을 따라갑니다.
힘들어서 따라올 수 없는 이백 명의 사람들은 시냇가에 머물게 하고 나머지 사백 명을 거느리고 쫓아갑니다.
한시가 급한 상황이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11절과 12절을 보면 ‘무리가 들에서 애굽 사람 하나를 만나 그를 다윗에게로 데려다가 떡을 주어 먹게 하며 물을 마시게 하고 그에게 무화과 뭉치에서 뗀 덩이 하나와 건포도 두 송이를 주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가 사흘 동안 떡도 먹지 못하고 물도 마시지 못하였다고 말씀하는 것은 그대로 지나치면 죽을 수 있는 상황이었다는 것입니다.
다윗과 사람들은 아말렉을 쫓아가기도 바쁜 상황이었을 덴데 애굽 사람을 도왔다는 것은 그가 가족들의 정보를 알고 있었기 때문이 아니라 죽어가는 영혼을 그냥 지나칠 수 없는 긍휼의 마음 때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도운 애굽 소년으로부터 아말렉 사람들이 있는 곳을 알아낼 수 있었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병들어 죽게 되었던 애굽 소년을 기도 응답의 도구로 사용하신 것입니다.
만약 다윗과 그의 사람들이 애굽 소년에게 긍휼을 베풀지 않고 급하다고 그냥 지나쳤다면 아말렉 사람들을 찾는 일이 더 힘들어졌을 것입니다.
그러나 바쁜 중에도 긍휼을 베푸는 손길을 통해 아말렉 사람을 찾을 수 있는 열쇠를 얻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어떤 상황이든지 하나님을 힘입어 용기를 얻는다면 길을 열어 주시는 줄 믿습니다.
소자에게 긍휼을 베푸는 손길이 하나님의 구원의 열쇠가 될 수 있었던 것처럼 우리가 돌아보는 한 영혼을 통하여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를 경험하는 우리의 삶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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